이번 주 설교동영상은 방송실 사정으로 준비되지 못했음을 사과드립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원고를 실어드리오니, 많은 은혜 되시기를 바랍니다.
-----------------------------------------------------------------
150621 주일예배 성경/엡4:26-27, 31-32
“욱하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근래 우리 사회를 가리켜, “분노하는 사회”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얼마 전에 일어난 모항공사의 땅콩 회항사건을 비롯해서,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 주차 시비로 빚어진 야구방망이 난동, 층간 소음문제로 야기된 이웃
살인, 그리고 다른 차량에 대한 위협운전 등등, 모두가 화를 참지 못하는
“분노하는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분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喜怒哀樂)가운데 하나인 '노'(怒)에
해당되는 감정이다. 분노는 기쁨과 슬픔과 같은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분노가 우리 생활의 일부분인 것을 인정하고 있다.
(잠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오늘 본문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화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화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화를 어느 정도 인정하신다고 해서 화가 날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영어의 화(anger)는 위험(danger)에서 글자 하나가 빠진 것에 불과하다.
이같이 화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지만, 잘 다루어야 할 위험한 감정
이기도 하다. 화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가 분노표출(angry-out)이다. 화가 날 때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분노는 짧은 광증(狂症)이다.”(오라티푸스)
“분노는 순간이지만, 영원한 후회를 부른다.”(미상)
둘째, 분노억제(angry-in)이다. 화는 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은 에너지와 같아서 결코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 있다가 언젠가는 표면에 떠오르게 된다.
결국 응축된 분노는 자기 몸을 병들게 하거나, 그것이 폭발할 때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쏟아 붓기도 한다.
셋째는 분노조절(angry-control)이다. 화가 난 상태를 자각하고 그것을
통제하면서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마음 다스리기!).
무엇보다도 심리학자들은 분노를 표출하지 말고, 표현하는 법을 익히라고
조언한다. 분노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이
분노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예) 부부관계에서 어떤 사소한 일로 분노가 일어났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당신 화나셨어요?”라고 물을 때 남편은 큰소리로 “화 안 났어!”
이것은 분노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분노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
분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3F”를 제안한다.
사실(Facts), 감정(Feeling), 정당한 요구(Fair requests)다.
(1) 사실(Facts) -> 자신의 생각을 보태거나, 상대방의 의도를 추측 또는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2) 감정(Feeling) -> 사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3) 정당한 요구(Fair requests)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는 예의를 갖추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차분하게 자기의 주장을
제시하는 정도로만 행해져야 한다.
이제 성경으로 돌아와서, 화를 어떻게 조절하고 다스려야 하는지
하나님의 교훈을 들어보자. 이것은 세상학문이 가르쳐주지 않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욱하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
1. 화가 죄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세상의 가르침은 화에 대해 말하면서 죄를 언급하지 않지만, 성경은
화가 죄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죄를 짓지 말라” -> 화가 죄로 연결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화를 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그래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교훈한다.
다시 말해 화를 품는 것에는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그날그날 화를 풀고 잠자리에 들라는 것이다.
화를 오래 품으면 어떻게 되는가?
의사들은 경고하기를, 화를 품고 지내면 혈관이 수축되어 혈압이 오르고
호흡이 바빠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위궤양,
과민성 대장염, 편두통, 심장병, 불면증, 우울증, 화병이 생긴다고 말한다.
더욱 나쁜 것은 화를 품고 있으면서, 그것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위장하고
속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이글거리는 불을 가슴에 담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다. 심리학자 칼슨 박사는 분노의 감정을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으면
‘용해되지 않는 분노의 응어리’로 쌓인다고 말했다.
이렇게 묻어둔 분노의 감정은 언젠가는 표면에 떠오르게 되어 엉뚱한 대상에게
전이될 수도 있고, 응축된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를 보라. 하나님께 나아가 울부짓는다. 글을 써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하면 분노의 감정이 해소된다. 또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고통을 큰 소리로
하나님께 외친다.
(시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토하라”는 것은 '쏟아 붓는 것'을 말한다. 물을 쏟듯이 마음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모두 내어놓는 것을 가리킨다.
2. 마귀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사도 바울은 화를 죄와 연결시켜 주의를 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으로까지 보고 있다.
“틈을 주지 말라” -> 전쟁용어! 화는 마귀가 노리는 상륙거점이다.
마귀는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 전체를 타켓으로 삼지 않고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분노의 감정이다.
그러므로 자주자주 빈번하게 화를 내는 사람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여러 이유를 대면서 정당화시키지 말고, 마귀에게 농락당하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 쉽게 틈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본래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파괴적인 감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은 이 분노를
잘 다스리고 통제한다.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그리스도인은 끄떡하면 먼저 화를 내고 본다. 대수롭지 않는
일인데도 절제하지 못하고 화를 터뜨린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바로 습관이다! 분노는 어느 정도 학습된 반응이다.
분노하는 환경에 자주 노출되면, 보고 배워서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예를 들면, 화를 잘 내는 부모나 교우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화를 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이에 습득하게 된다.
(잠22:24-25)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 분노는 전염병과 같아서 전염되고, 그 자리에 귀신들이 꼬인다.
우리는 분노를 일삼는 자들을 멀리하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가까이
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서 그분의 온유하신 성품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온유하신 JX이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임하셨다.
마지막에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으며 뺨을 칠 때도, 잠잠한 양같이 참으셨다.
(세네카) “분노의 가장 좋은 처방은 그것을 연기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서재에 이런 글을 써 붙여놓았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고, 상대를 죽이고 싶으면 백까지 세라."
3.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로 대체하라.
화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짓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화를 버리라고 말씀한다.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 '버리다'의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깨끗이 쓸어버리다'라는 의미.
화의 다양한 모습들이 언급되어 있다(악독, 노함, 분냄, 떠듦, 비방).
악독 – 원한을 품는 것. 노함 – 격한 감정을 터뜨리는 것
분냄 –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것
떠드는 것 –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 것
비방 –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
화를 버리고, 그 다음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화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극복할 수 있다(=대체의 원리!).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
친절 – 선의를 가지고 사랑을 베푸는 것(=인자/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
불쌍히 여김 – 상대방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자비/역시 하나님 성품)
용서 –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
악의를 선의로 대체하라!(악독/친절, 비난/동정, 원망/용서)
무엇보다도 욱하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 다른 것 다 잊어버려도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아무도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분노의 감정을 십자가의 은혜로 대체하라!
(예)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체스코가 어느 날 우물에서 물 긷는 여자에게서
특이한 점을 보았다. 여자는 물통에 물을 붓고 나무 조각을 띄운 후 어깨에
메는 것이었다. "나무 조각은 왜 띄웁니까?" 프란체스코가 묻자 여자는,
"물통이 흔들거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랍니다."라고 말했다.
"나뭇조각을 띄우는 이치"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다.
-> 분노가 나의 마음에서 넘쳐 나려고 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띄우자!
(결론)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또한 위험한 감정이다. 죄가 되거나
마귀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잘 다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