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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방화와 살육으로 폐허가 된 제암리 마을
휴일을 맞아 경기도 화성 제암교회를 찾았다. 오래 전부터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던 그 아
우성을 찾아 이제는 도시화 되어가는 옛 땅을 찾았다. 구십오 년 전에는 초가집과 논밭
으로 어우러진 전형적인 농촌의 목가적 풍경이 이제는 수십 층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서
고 왕복 육 차선의 도로에는 바쁘고 지친 자동차들이 고속질주하는 땅이 된 제암리를 찾
았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 독립만세운동이 불길처럼 휩쓸던 때에 화성 땅도 예외는 아
니었다. 삼월 이십팔일 사강 장터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위한 소요가 일자 일본 경찰은
총을 쏘며 군중을 헤치고 남양으로 달아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일경 노구찌가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쓰러지고 몽둥이에 맞아 죽게 된다. 제암교회 사건은 수원, 화성 주민들
의 삼일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보복 응징으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결정판이다. 일본 육
군 보병 칠십구 연대 아리타 중위의 지휘아래 제암리에 살았던 순사보 조희창, 발안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던 일본인 거류단장 사사카의 안내로 제암리로 들어와서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주민들을 제암교회 예배당에 가두고 사격을 가하면서 방화하여 이십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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